-분석내용 계속-

‘발그스레한 빛깔이 그녀의 백옥같은 피부를 물들였는데’이는 여성이 서서히 성적 흥분이 진행되어 백옥같은 피부로 상징되는 여성적인 깨끗함, 순수함, 고상함이 차츰 없어지고 산짐승같은 남성적인 동물상태로 변해 나가기 위한 전 단계에 이르고 있음을 상징한다.

‘그것은 마치 진홍색 커튼이 대리석 벽을 물들인 것과 같았다’는 표현은 우선 있는 그대로 연상적 의미를 분석하고, 앞에서 분석된 프시케의 산짐승과 전원풍경의 조각그림과 비교하면 성적 자극과 성적 쾌감에 대한 상징을 볼 수 있다.
진홍색은 붉은색이다. 커튼은 햇빛을 막는 부드러운 천으로 착 달라붙어 고정된 것이 아니라 허술하게 벽이나 창문 등과 밀착되어 있다. 즉 커튼은 벽면과 닿는 부분도 있고 안 닿는 부분도 있으며 닿아도 꽉 밀착된 상태가 아닌 매우 허술한 상태로 있다. 왜냐하면 그래야만 커튼을 쉽게 치거나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남녀의 성기는 여성의 오르가슴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자연 선택된 것은 아니고, 임신 가능성을 높여 종족을 번성시키고 유지하는 방향으로 진화해 왔다고 판단된다. 즉 여성의 질과 남성의 페니스가 꽉 조일 정도로 뻑뻑한 구조를 보인다면 다음 같은 이유로 인류는 멸망했을 것이라고 판단된다.
첫째는, 인간의 사고기능이 발달되지 않아 문명이 태동하지 않은 시기에는 인간은 사나운 맹수나, 타인들로부터 안전하게 격리된 채로 성행위를 갖지 못했을 것임에 틀림없다. 오늘날과 같은 아파트 철문이나 사법제도도 확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성행위시 성본능이 발동되면 주위에 대한 경계심과 주의력을 거의 잃게 돼 자신의 생명을 방어할 수 있는 조건반사적인 동작이 위협을 받게 되므로 성행위는 빠르게 끝날수록 자신의 생명보호에는 유익한 구조였다.
둘째는, 성행위가 빨리 진행된다 함은 여성의 질 속에서 프시케가 살펴본 맑은 물로 상징되는 윤활제가 나오기도 전에 남성들이 일방적으로 삽입하여 사정하고 끝내는 원초적인 성교방식이다. 자신들의 생명을 위험으로부터 최단시간만 노출시키면서 효과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남녀의 성기가 촉촉이 젖을 시간적 여유없이 남성들의 일방적인 삽입으로 성행위가 진행하게 된다. 이때 만약에 여성의 질과 남성의 성기가, 여성의 질이 좁아서 또는 남성의 성기가 매우 크고 두꺼워서 빡빡한 구조라면 남성의 성기가 여성의 질 속에 잘 들어가지 않거나, 들어가는 순간 매우 아픈 통증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남녀의 성기 표피는 매우 얇고 서로 접착하는 성질이 있어 찢어지거나 손상을 입게 된다. 이와 같은 통증의 경험은 남녀들로부터 성행위를 기피하게 만들거나 성행위 빈도를 현저하게 떨어뜨려 , 결과적으로 종족의 감소 내지는 멸망을 초래할 수가 있다.
그래서 인간의 남녀의 성기구조는 여성의 오르가슴을 촉진하는 방향이 아닌 어떠한 상황하에서도 남자의 성기가 여성의 질 속을 커다란 저항감없이 부드럽게 출입할 수 있는 방향으로 설계되어 진화됐을 것이라고 판단된다. 그러므로 커다란 남성의 성기가 여성의 질 속에 좀더 밀착된 자극을 주어 성적 오르가슴을 크게 한다는 것은 전혀 근거가 없는 물리학적 편견이라 할 수 있다.

여성의 질은 매우 신축성이 있는 구조다. 우리들의 입은 아무리 벌려야 사과 하나가 들어가지 않는 구조이지만 여성의 성기는 갓난아이들의 머리까지 통과해야 하는 신축적인 구조로 되어있어, 아무리 남성의 성기가 작더라도 질벽과 접촉하게 되며, 또한 반대로 아무리 남성의 성기가 크고 두꺼워도 그 영향력은 벽에 친 커튼의 의미밖에 더 이상의 자극은 없는 것이다.
‘마치 진홍색 커튼이 대리석 벽을 물들인 것과 같았다’는 아탈란테의 느낌을 표현한 것으로 이번 경주가 끝나게 되는 것은, 남자들의 미숙한 성경험으로 일방적인 삽입과 페니스에만 의존하는 성행위로는 여성들을 결코 만족시킬 수 없다는 것을 상징하고 있다.
물론, 대리석은 여성의 질벽을 상징하고 있다. 진홍색의 커튼과 같은 부드럽고 거의 감촉을 느낄 수가 없는 남성의 페니스로는 여성의 매끌매끌하고 대리석 같은 질벽을 자극할 수가 없는 것이다.
여기서 대리석 벽을 물들인 것같다는 표현은 물론 여성의 질벽 자체가 대리석이 아니라 남성 성기의 대소에 관계없는 대리석이라는 표현으로 남녀의 차이점을 잘 표현하고 있다. 남자는 진홍색의 커튼으로 상징되는, 발기가 충분히 이루어져 사정에 성공하여 성적인 쾌감을 얻고있는 반면에, 이러한 남성의 발기한 페니스가 대리석으로 상징되는 여성의 질벽에 깊숙한 자극은커녕, 겉만 물들이다 말고 성행위가 종료됨을 상징한다. 대리석은 맨질맨질한 구조의 돌로써 물감 등이 쉽게 침투하지 못한다. 겉에만 묻었다가 이내 씻기기 마련이다.
이것은 여성이 전혀 성적인 흥분이나 오르가슴에 도달하지 못하고 남성의 일방적인 삽입과 사정으로 성행위가 끝나게 됨을 상징한다.

‘모든 경쟁자들이 그녀에게 패하여 무자비하게 사형을 당한다’는 표현은 지금 히포메네스가 자신의 성행위의 심판관으로서 객관적인 입장에서 아탈란테가 성적 오르가슴상태에 도달하지 못하는 원인을 분석하고 인정함으로써 그와 같은 미숙련적인 성행위 방식을 없애버리거나 포기하는 심리적 상황을 상징하고 있다.
히포메네우스가 이런 결과에 겁먹지 않고 처녀를 응시하면서 말하는 것은 히포메네우스가 아탈란테와 자기자신의 성적인 문제점을 객관적인 태도로 바라보는 데서 오는 통찰력의 증가로 문제의 원인을 찾고 해결해 나갈 수 있는 자신감이 생기기 때문이라고 판단된다. 처녀를 응시한다는 것은 여성의 성적인 현실 또는 오르가슴의 생리에 대하여 직면하고 관찰하고 있는 태도다.

‘이런 느림보들을 이겼다고 해서 뽐낼 것은 없소. 내가 한 번 경주해 보리다’라는 표현에서 느림보들은 달리는 능력 자체가 느린 것이 아니라 성적 능력이나 손발의 사용능력이 떨어져서 결국은 경주에서 지게 된다는 능력이 없는 상태를 상징하는 표현이다. 여기서는 조루증이나 정상적인 남자도 여성보다 일찍 사정에 도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여기서 뽐낼 것은 없소’라는 표현은 여성이 부부관계나, 애인관계에서 오르가슴이나 성적인 만족을 얻지못하게 되면 뽐내기는커녕 등을 돌려대거나 성적인 욕구불만을 노출시켜 남성을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취하고, 남성은 이에 반해서 무슨 죄를 지은 것처럼 죄책감이나 열등감을 느끼는 상황을 말한 것이다.
히포메네스는 성적 경험이 미숙하여 여성을 오르가슴상태로 이끌지 못했던 지금까지의 자기자신의 성적 태도를 반성하고 객관적인 통찰력에 의한 여성의 성반응 구조를 이해하고 이에 따라 새로운 방법으로 여성을 오르가슴에 도달하게 만들겠다고 다짐한다.

‘아탈란테는 측은히 여기는 듯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는 표현은 오랜 세월동안 자신의 애인이나 남편과 많은 성행위를 해오면서 오르가슴을 느껴보지 못한 여성들이 히포메네스적 방법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단정짓고 있는 심리적 상황이다.

‘그녀가 그를 이겨야 좋을지 져야 좋을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는 표현은 여성들이 고상하고 우아한 자신(이긴 상태)을 동물적인 상태(진 상태)로 돌변하게 만드는 성적 흥분과 오르가슴상태에 대하여 고민하고 있음을 상징한다.

‘어떤 신이 이처럼 젊고 아름다운 청년을 유혹하여 그 목숨을 버리게 하는가. 내가 불쌍히 여기는 것은 그의 아름다움이 아니라(그러나 그는 아름다웠다) 젊음이다. 나는 그가 경주할 생각을 버리기를 바란다. 혹은 끝내 그 생각을 버리지 않는다면 나를 이겨주기를 바란다’는 표현은, 아프로디테(어떤 신)가 왜 자신이 주체하기 어려운 왕성한 성본능과 성적 경험이 미숙한(젊고) 자아(아름다운 청년)를 성적 충동에 휘말리게 하여(유혹) 성적인 열등감이나, 패배감(죽음)을 맛보게 하려는 것인가. 여성이(오르가슴) 무시하고 싫어하는 것(불쌍히 여기는 것)은 자아(아름다움) 그 자체가 아니라 미숙한 성경험(젊음)이다. 나는(아탈란테) 여성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미숙한 성경험의 남자들(그가)이 성행위를(경주)할 생각을 버리기를 바란다. 그렇지 않고 부득이하게(끝내) 성행위하고 싶은 생각이 있다면 여성에게 오르가슴을 안겨주는 성행위를 원한다(이겨주기 바란다).

‘그녀가 이런 생각을 되풀이하며 주저하고 있을 때’라는 표현은 성행위시마다 이번만큼은 남성들이 자신에게 오르가슴을 안겨주겠지 하고 생각했다가 번번이 실패로 끝나게 되자, 남성과 새로운 성행위에 임할 때 ‘나를 만족시킬 자신이 없으면 아예 성행위를 할 생각도 말아야지 무슨 성행위냐’는 내적인 반응과, 그래도 부부간의 또는 애인간의 예의상 자신과 성관계를 갖고 싶으면 자신을 오르가슴상태에 도달할 수 있게 해달라면서 남성에 대하여 반신반의하는 심리적 상황의 표현이다.

‘구경꾼들이 경주를 시작하라고 재촉했고’라는 표현은 여성이 성행위 시작 전에 이번에는 남성이 제대로 해줄까 하는 의심 반 기대 반의 생각에 잠시 빠져서 머뭇거리고 있을 때, 이미 남성들은 여성의 아름다운 여체를 봄으로써(구경꾼들) 성적 흥분이 여성보다 빨리 일어나며 여성과의 성행위(경주)를 서두르게 되는(재촉) 심리적 상황의 상징이며, 이래서 남자들이 사정을 금방하게 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즉 남자들은 여자들에 비해 눈과 귀로 성적인 흥분을 많이 받기 때문이다.

‘그녀의 아버지도 어서 준비하라고 딸을 채근했다’는 표현은 약간은 어려운 부분이나 아버지의 연상적 속성을 살펴보면, 일, 사회, 국가, 이성, 법질서, 그리고 명령과 금지, 의무와 책임감 등을 들 수 있다. 남녀가 성행위를 하는데 여성측의 아버지가 와서 성행위를 하라고 독촉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신화적인 표현으로 일반적인 여성들의 마음 속에 내재화된 부성적인 요소를 아버지로 의인화한 것으로 보인다. 남녀간의 성행위시 여성들이 자신은 전혀 오르가슴도 느끼지 못하고 번번이 욕구불만으로 끝나고, 남성들만 이기적으로 재미를 보게 되자, 남성들의 성적요구에 대해 약간은 거부감을 느끼며, 머뭇거리는 태도를 취하자, 여성들의 마음 속에 있는 가부장적 요소가 작용하여 ‘부부간에 있어서 남편이 성행위를 원할 때 응해주는 것이 기본적인 예의이며 가정의 화목을 위해서도 바람직하다’라는 어떤 거절할 수 없는 느낌이나 생각 등이 순간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심리적 상황의 표현이다.

‘그리고 히포메네스는 아프로디테에게 기도를 올렸다’는 표현은 히포메네스라는 남성이 자신의 성본능에 대하여 자아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객관화된 대상으로 보고, 자신에게 완숙한 성적 능력을 갖추게 해달라고 바라는 상태의 심리적 상황의 표현이다.

‘아프로디테여, 도와주십시오. 나를 이렇게 만든 것은 바로 당신이니까요. 아프로디테는 이 기도를 받아들여 자비를 베풀었다’는 표현은 자신의 사랑의 능력(아프로디테)을 객관화시키고 그 사랑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게 해 달라고 빌면서, 자신이 여성을 성적으로 만족시켜야 할 상황에 처한 것도 바로 사랑(성본능, 아프로디테)때문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심리적 상황이며, 이와 같이 남성이 자신의 성본능에 대하여 객관적인 태도를 취하자 객관화된 성본능인 아프로디테 여신이 히포메네스의 소원을 들어준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