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의 바람둥이 자코모 카사노바에게도 동정은 있었다.

그가 뭇남성들의 존경과 함께 여성들의 비난대상이 되는 것은 섹스 때 일생동안

느끼는 15-18시간의 오르가슴 시간을 다양한 섹스메이트들과 좀 더 길게 나누었

다는 점 때문이다.

그러나 카사노바가 희대의 난봉꾼으로 이름을 날리게 된 것은 그의 위대한 남성

기의 매력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16살의 나이로 첫동정을 잃었을 때부터 49살까지 되던 해 1774년까지의 성생활

을 생생하게 묘사한 12권의 자서전 때문이었다.

18세기 당시 유럽의 성생활을 밀도있게 담아낸 그의 자서전에 따르면 1741년 열

여섯살의 소년 자코모 카사노바는 안젤라라는 요염한 여인과 사랑에 빠져있었다.

그때 카사노바는 열다섯살의 어린나이에 성직자인 수도원장의 신분이었다.

그는 어느 늦은 밤 안젤라를 만나기로 약속했다.

그녀가 나타나지 않자, 심부름꾼 노릇을 하던 안젤라의 사촌 마르통(16살), 나네

트(15살)와 첫사랑을 나눈다.

저녁식사를 마친 3명의 순진한 선남선녀들은 오빠와 누이같이 지내자고 사랑의

맹세를 나누기 위해 입맞춤을 한 것이 빌미가 되어 카사노바는 자신의 동정을

마르통에게 바쳤다. 카사노바가 73살의 나이로 죽을 때 상대한 11개 나라 1백

32명의 여인 가운데 마르통은 카사노바의 동정을 처음으로 빼앗은 첫여인이었다

카사노바가 이처럼 많은 나라, 많은 여성과 수많은 성행위를 가질 수 있었던 것

은 다분히 그의 색정적 끼 때문이기도 하지만 화려한 그의 경력도 일조를 했다.

1725년 이탈리아 베니스에 태어난 카사노바는 열여섯살에 법학박사가 되었고

시인,사업가,바이올리니스트,격투사,마술사,역사가 등을 거쳐 영국에서는 산더미

같은 빚에 몰려 몰래 도망쳐나오기도 했다.

카사노바가 잠자리를 가장 많이한 여성은 11-29세 사이의 미혼여성이 압도적

으로 많았고 귀족이나 왕족 뿐만 아니라 하녀나 창녀 배우 무희들에게도 골고루

그의 정액을 선물했다.

자코모 카사노바, 사해동포주의를 부르짖는 오늘의 코스모폴리탄이라고 하면

지나친 비유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