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장애인에 대한 성폭행 처벌 논란>

법원,"명백한 저항불능상태 입증돼야" 시민단체,"장애 자체가 항거불능"
(부산=연합뉴스) 박창수 기자 = 정신지체 장애를 겪고 있는 어린 여성이 이웃 어른 등 윗사람의 요구로 성관계를 가졌다면 처벌할 수 있을까?

법원이 이런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에 대해 잇따라 무죄를 선고하면서 정신지체 장애인의 성 자유권에 대한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부산고법 제2형사부(재판장 지대운 부장판사)는 20일 동거하는 여성의 딸인 정 신지체 2급 장애인 A양(99년 피해당시 14세)을 5년간 8차례에 걸쳐 성폭행한 혐의(성폭력 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에 관한 법률위반)로 기소된 김모(52.환경미화원)씨에 대해 1심에서와 마찬가지로 무죄를 선고했다.

지난 해 9월에도 부산고법은 한 마을에 사는 미성년 장애인 B양(17)을 98년 9월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이모(69)씨에 대한 대법원 환송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두 사건의 공통점은 피해자가 모두 정신지체장애 1급과 2급으로 지적 능력이 크게 떨어지는 미성년이며 가해자가 한 집에 거주하거나 이웃에 사는 평소 잘 알고 있는 어른이라는 것이다.

이 사건에 대해 법원이 무죄를 선고하며 내세운 법리는 장애인에 대한 성폭력을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성폭력특별법 8조의 `항거불능상태'가 아니었다는 것.

지적 능력이 부족해 윗사람들의 성행위 요구에 충분히 반항하거나 싫어한다는 의사를 전달할 능력이 떨어져 쉽게 당할 수 있지만 완전하게 자기방어를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다.

지적 능력의 부족은 학습능력이 떨어질 뿐 사회적 성숙도, 예를 들어 어느 것이 옳고 그른지 또는 어느 행동을 해도 되는지 여부를 알고 있다는 것이다.

전자의 경우 피해자가 6~7세 가량의 지적수준이었다고 하지만 성교육을 받았고 성관계후 `생리를 하지 않아 임신한 것 같다'는 등의 의사를 전달한 것으로 미뤄 성적 방어능력이 있다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후자의 경우도 비록 마을 어른이 겁을 줘 옷을 벗게 한 뒤 성폭행한 점은 인정되지만 물리적으로 절대적으로 반항이 불가능한 상태는 아니라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두 사건 모두 법에서 정한 범죄구성 요건에 부족하다는 판단이다.

그러나 여성단체나 장애인단체는 정신지체 장애인의 경우 장애 자체가 관련 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항거불능상태'라고 주장하며 관련 조항을 구체적으로 명시하도록 법 개정을 촉구하고 있다.

사단법인 부산여성장애인연대 장명숙 소장은 "정신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사람을 쉽게 신뢰하게 되고 누군가 달콤한 말로 유인하거나 약간의 위협만해도 겁을 먹어 성폭력의 위협에 노출된다"면서 "완전히 의식이 없는 상태 또는 도저히 빠져나오기 불가능한 상태에서 당한 폭행만 인정하는 법원의 판단은 현실을 무시한 결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여성단체 등의 주장대로 정신지체장애인 성폭행에 대한 범죄 구성요건을 완화할 경우 그들 또한 마땅히 누려야 할 성에 대한 자유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이에 따라 법조계에서는 현행 법규의 테두리안에서 장애인의 성 자유권을 보호하면서 가해자를 처벌하기 위해서는 기소단계에서부터 피해자 등과 충분히 상의해 적용 법조를 달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정신지체장애인에 대한 성폭행을 처벌하도록 규정하는 법률은 `항거불능상태'를 엄격하게 규정하고 있는 성폭력 특별법 8조 외에도, 처벌수위가 약하고 친고죄 성격인 형법 302조도 마련돼 있다.

실제 두번 째 사례의 경우 가해자의 상당한 위협이 있었기 때문에 기소단계에서부터 피해자의 고소를 유도해 형법을 적용했더라면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었다는 게 법조계 일각의 판단이다.

[연합뉴스 2005-04-20 1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