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9년 찰스 다위은 생명의 창조와 구성을 밝힌 ‘진화론’을 발표하여 짝짓기의 신비를 풀어냈다.
숫공작의 화려한 깃털과 인간의 풍만한 유방, 엉덩이는 모두 상대방의 성적 선택(Sexual Selection)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같은 풍습은 현재에도 중앙 아프리카의 부시맨이나 호텐토트족에 잘 남아있다.
프랑스 고고학자 류케의 연구에 의하면 호텐토트족의 여성들은 자신의 소음순을 ‘호텐토트의 앞치마(apron)'라 할 정도로 길게 느리고 소녀시절부터 엉덩이를 주물러 엉덩이를 한껏 뒤로 나오게 성적 매력을 발산시키고 있다.
그녀들은 이런 이상적인 미인이 되기 위해 어릴 때부터 고기와 우유 등 지방질의 영양요소를 다량으로 섭취한다.

프랑스 도르도뉴 지방에서 발견된 선사시대의 꽁바렐 벽화는 여성이 양 손 양 무릎을 땅에 대어 엎드려 있고 남성이 그 뒤에 서서 성교하는 후배위 자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벽화에서 나타난 원시 여성의 엉덩이 역시 앞으로 튀어나온 유방과는 대조적으로 뒤의 풍만함을 과시한다.

궁둥이,유방,성기 등이 이처럼 필요이상으로 크고 풍만한 것은 동물과 같은 성적 특징을 나타내고 생명의 원천으로 이것들이 숭상되었기 때문이다.
다윈의 진화론대로라면 남성의 체격은 사냥에 적합하게 발달한 반면 여성의 몸매는 출산과 호모 에로티쿠스(性愛人)로서 엉덩이와 유방을 풍만케 했다.

또한 1년에 한번씩 성교하는 계혼(季婚)이 없어진 1만년전인 중석기시대에 접어들면서 원시인들은 생식교접에서 오락섹스로 자유롭게 성을 즐겼다.
이에 따라 성애술이 발달하고 동물과 같이 후배위나 서서하는 성교에서 풍만한 여성 엉덩이를 받침대로 하는 드러눕는 섹스로 성생활을 바꾸기 시작했다.
선사시대 호모 에로티쿠스는 오래전부터 여성의 육체를 인공적으로 개조해서 그것을 쾌락의 도구로 삼았다.
기원전 1만년으로부터 기원전 3천년까지 초기 농경시대는 일부다처의 매매혼이 관례화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