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H. 로렌스의 소설 <채털리 부인의 연인>(Lady Chatterley's Lover, 1928)은 묘사된 성적 표현이 너무도 적나라하고 노골적이라는 이유로 작품성과는 상관없이 외설 시비에 시달려야 했다. 그리고 수십 년에 걸친 법적 공방은 오히려 독자들에게 폭발적인 관심을 불러 일으켜 수십 종의 해적판이 유행하기도 했다. 소위 ‘외설 논란의 고전’이자 ‘에로틱문학의 금자탑’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이 소설을 영화사가 지나칠 수 없을 것이라는 건 자명한 일.

지금까지 <채털리 부인의 연인>은 수차례 TV시리즈와 영화로 만들어졌다. 그 중에서도 국내에 가장 잘 알려진 ‘채털리 부인’은 쥐스트 재깽이 연출한 (Lady Chattrley's Lover 혹은 Amant de lady Chatterley, L)(1981)이다. 당시 타이틀 롤을 맡은 세계적 섹스심벌 실비아 크리스텔의 농염한 연기는 아직까지도 관객들의 기억 속에 생생히 남아 있다.

그리고 최근에 새로이 파스칼 페랑 감독의 <레이디 채털리>(Lady Chatterley 혹은 Lady Chatterley et l'homme des bois)(2006)가 국내에 개봉되었다. 2007년 세자르 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과 여우주연상을 포함해 5개 부문을 수상한 이 작품은 국내 개봉이전부터 성기와 체모의 노출 여부를 놓고서 과연 심의를 통과할 수 있을지 우려를 낳았다. 그러나 흐름 상 꼭 필요한 장면이라는 판단 하에, 이 영화에는 파격적인 노출신이 여러 차례 등장한다.

<레이디 채털리>는 전작들과 여러 점에서 차별화된다. 우선 실비아 크리스텔이 주연을 맡은 영화를 비롯해 대다수가 에로티시즘을 표현하는데 주력했다면, 이 영화는 여성의 시각에서 주인공 콘스탄스 채털리(마리나 핸즈)가 사랑의 과정에 빠져드는 과정에 주목하고 있다. 이러한 배경을 두고서 최초로 여성감독에 의해 ‘채털리부인’이 묘사되었다는 점을 강조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그보다는 D.H. 로렌스의 <채털리부인의 연인> 세가지 버전 중 - 그리 잘 알려지지 않은 두 번째 버전을 원작으로 사용했다는 점이 보다 크게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가장 잘 알려진 것은 세 번째 버전이자 최종적인 작품이 된다)


이 영화를 보고 느낀 가장 큰 장점은 원작을 최대한 반영했다는 것
이다. 중간 중간마다 나오는 차분한 음성의 내레이션은 원작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하다. 마치 조미료나 양념없이 원재료를 그대로 불에 익힌 음식이라고나 할까. 또한 콘스탄스를 단순히 욕망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고 남성과 동등하게 표현하여 인식의 전환을 꾀하는 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리고 이러한 여자 주인공의 심적 변화를 햇빛, 바람, 비라는 자연현상과 숲으로 대변되는 나무, 새, 꽃 등으로 묘사하는 것이 아주 자연스럽다. 콘스타스가 파킨과의 첫 정사 후 세상이 한결 아름답게 보이는 것이 그 한 예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아쉬운 면도 드러난다. 몇 차례의 파격적인 정사신에도 불구하고, 선정적인 기분이 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원작에 지나치게 충실해서였을까 아니면 사냥터지기 파킨(장 루이 쿨룩)의 모습에서 건장한 남성으로서의 섹스어필한 모습이 느껴지지 않아서였을까. 또한 국내 개봉 시 약 30 여분 정도 가위질했다는 것이 개운치 않은 기분을 들게 한다.

◇실비아 크리스텔 주연의 '채털리 부인의 연인'(1981)

출처 : 세계일보 e-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