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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이 터부시되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성에 대한 각종 정보와 담론들이 넘쳐나고 남성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음담패설까지 공중파에서 버젓이 회자되고 있는 요즘, 뒤에 숨어서 성을 얘기하는 촌스러움은 사라진지 오래다. 성에 대한 담론들이 하나의 산업이 되어버린 지금, 대한민국은 확실히 뜨겁고 화끈해졌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대놓고 성을 얘기한다는 것은 고상하지 못하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초등학생도 ‘비아그라’를 아는 시대지만 갈수록 ‘HOT’해지는 우리사회를 바라보는 기성세대들의 탄식은 커지고 있다.
2011년 국민들이 성에 대한 의식 및 태도는 어떨까. <일요신문>은 지령 1000호 특집으로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한길리서치, 한국성과학연구소와 공동으로 ‘성의식 실태 국민여론조사’를 실시했다. 조사는 서울시에 거주하는 만 19세 이상 성인남녀 1000명(남 490명, 여 510명)을 무작위 추출해 질문지법으로 진행됐다. 설문결과와 성과학연구소 이윤수 박사의 도움말을 토대로 2011년 대한민국 킨제이보고서를 만들어봤다.
우선 우리나라 성문화의 개방성 및 건전성에 대해 국민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조사결과 응답자의 63.3%가 개방적이며 66.6%가 불건전하다고 답했다. 성적 표현의 자유로움이 허용되지만 성을 상품화시키는 사회 분위기와 성적욕망에 대한 저급하고도 노골적인 집착, 급증하는 성범죄에 대한 우려에 의한 판단으로 분석된다.
2004년 성매매특별법이 시행된 지 8년째를 맞고 있지만 여전히 집창촌을 둘러싼 논란은 진행형이다. 법적 철퇴에도 불구하고 성매매업소들은 영업을 지속해오고 있으며 법망을 피하기 위한 변종영업이 급증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여전히 성매매수요가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그렇다면 집창촌에 대한 국민들의 생각은 어떨까. 결과는 다소 의외였다. 서울시민의 43.1%가 집창촌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특히 40, 50대의 비율이 높았는데 여성 응답자의 33.3%가 집창촌이 필요하다고 답변한 것이 눈길을 끈다. 이는 변종 성매매 및 미성년자 성매매, 각종 성범죄 등 성매매금지로 인한 부작용에 대한 인식 때문으로 분석된다. 즉 여성들이 남성의 성적 욕구를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대다수의 선량한 여성을 보호하려는 차원에서 집창촌 허용을 찬성했다고 볼 수 있다.
외도율에 대한 조사도 흥미롭다. 1996년 드라마 <애인>은 기혼자들의 ‘애인만들기’ 신드롬을 불러왔다. 기혼자들의 외도는 더 이상 충격적이지 않다. ‘애인 하나 없는 기혼자는 바보’라는 말은 외도 수위가 위험수위에 이르렀음을 방증하고 있다. 조사결과 서울 시민 중 34.4%가 배우자 외 다른 사람과의 성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남성이 반 이상인 58.3%를 차지했으며 여성은 13.1%였다. 연령별로는 40대(46.9%)와 60대(41.8%)에서 높은 수치를 보였다. 배우자 외 성경험 상대는 이성친구가 44.0%로 가장 많았는데 유흥업소 종사자도 39.6%를 차지했다. 전문가들은 기혼자들의 외도율이 최근 심각한 사회문제가 된 이혼율의 증가와 무관하지 않다며 가정을 지키기 위한 개인의 노력이 절실하다고 조언한다.
스와핑과 동성애 등 이색적인 경험에 대한 설문조사도 눈길을 끈다. 수년 전부터 인터넷에는 부부간 파트너를 바꿔서 성관계를 갖는 스와핑 카페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스와핑은 부부간 정조의 의무를 서로의 합의하에 깨뜨린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겨줬는데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이들은 0.5%였다. 스와핑을 하는 부부들은 성생활에 새로운 자극을 주기 위한 목적 혹은 성적 호기심으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은데 조사결과 부부생활의 권태기가 시작된다고 할 수 있는 40대에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서울시민 기혼자 0.7%는 동성애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2000년 탤런트 홍석천 씨가 커밍아웃을 선언한 이후 동성애에 대한 우리사회의 인식은 확실히 많이 바뀌었다. 김수현 작가는 2010년 10월 방영된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를 통해 동성애 커플을 다루기도 했다. 1948년 킨제이보고서는 미국의 경우 남성의 4%, 여성의 1~3%가 순수한 동성애자라고 명시하고 있다.
조사결과 서울시민 남성의 1.1%, 여성의 0.3%가 동성애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하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실제로 홍석천 씨를 비롯한 많은 동성애자들이 종종 “드러내지 않을 뿐 현실속 동성애자의 숫자는 상상을 초월한다”고 언급하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전문가들은 동성애자들이 커밍아웃을 하지 못하는 이유로 사회적 편견을 들고 있다. 과거에 비해 동성애에 대한 차별과 편견이 사라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커밍아웃을 한 후의 상황을 감당해낼 자신이 없어 성향을 숨기고 고통 속에 사는 이들이 많다는 얘기다. 실제로 조사결과 29.4%가 병의 일종, 26.6%가 변태 같다고 응답했다. 이윤수 박사는 “동성애를 정신과적 질병의 개념이 아닌 성적 소수자로 보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라며 “다른 성적 성향을 갖고 있다고 해서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치부해서는 안된다. 이들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성행위 동영상 촬영에 대한 설문결과도 주목할 만하다. 최근 디지털 카메라와 스마트 폰의 일반화로 인해 둘만의 은밀한 행위를 동영상으로 촬영하는 커플이 늘고 있다. 둘만의 추억을 만들고 서로에 대한 애정의 표현으로 커플간 동영상 촬영은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추세다. 조사결과 서울시민 남성의 1.4%, 여성의 2.0%가 동영상 촬영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하지만 문제는 동영상 촬영으로 인한 갖가지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 문제의 동영상이 떠도는 것을 알고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는 경우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또 사귈 때 찍은 동영상이 결별 후 문제가 되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헤어진 연인의 동영상을 음란사이트 등에 유출하다 적발된 남성도 있다. 동영상 유출 피해를 입은 이들의 정신적 충격은 상상을 초월한다. 연인관계가 파탄나거나 의도하지 않게 유출되었을 경우 당사자들은 공황장애나 대인기피증에 시달릴 수 있고 사회적으로 퇴출을 강요받는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이 박사는 “둘 사이의 추억을 간직하는 것 못지않게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동영상 촬영은 보다 신중을 기해야 하며, 촬영 후에는 유출을 막기 위한 안전장치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번 조사에서는 성인남녀의 섹스라이프를 구체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설문들도 포함되어 있다. 응답자 중 35.1%는 한 달에 한두 번꼴로 성관계를 갖는다고 응답했고, 평균 성관계 시간은 30분 이내가 가장 많았다. 전 세계 평균이 연간 103회 정도라는 것에 비하면 현저히 낮은 수치다. 또 성관계시 정상위를 선호한다는 응답이 54.3%로 가장 높았다.
성생활 중 다소 이색적인 경험에 대한 설문도 진행됐다. 응답자의 33%가 오럴섹스 경험이 있다고 답했지만 항문성교나 성기구 사용, 발기유발약 복용 경험자는 극히 적은 것으로 나타났으며 무응답도 과반수 이상을 차지했다. 전체적으로 분석해볼 때 서울 시민들은 여전히 서구에 비해 정형화되고 단조로운 섹스라이프를 하고 있음이 드러난 셈이다.
기사작성 「일요신문」,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