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性
[이코노미세계] 떡장수 변강쇠(봉태규)에겐 남들 다 아는 고민이 있다. 남성의 ‘심볼’이라고 부르기 쑥스러울 정도로 너무도 작은 것이다. 더욱이 그가 사는 마을이 음양의 불일치로 아낙네의 기(氣)가 거센 곳이었으니. 이래저래 온 마을 사람들의 놀림꺼리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강쇠.
그런 그에게 천우의 기회가 찾아왔다. 음양통달 도사로부터 비책을 전수 받아 울트라 파워맨으로 새롭게 태어난 것이다. 하늘을 뒤덮고 만물을 요동치게 하는 강쇠의 양기. 한 줄기 오줌으로 산불을 끄는 것은 물론이고 태양까지 날아간다. 이제 여인들은 온갖 음식을 싸들고 그의 집 앞에 줄을 선다.
그 덕분에 처녀와 아줌마 그리고 과부 가릴 것 없이 모두 강쇠의 아기를 갖게 될 정도. 그 뿐인가, 국가 간 거시기 파워 대항전에 출전하여 조선 최고의 대물로 국위선양(?)을 하는 강쇠. 허나 인생역전으로 득의만면한 그에게 예상치 않은 시련이 다가오는데 (중략)
타이틀명 '가루지기'는 변강쇠를 지칭한다. 이유인즉 신재효가 지은 판소리 사설 6마당 중의 하나가 가루지기타령인데, 변강쇠타령으로도 불리기 때문이다. 물론 타령의 내용은 영화와 마찬가지로 적나라하고 노골적인 음담이 전편에 깔려 있다. 여기서 변은 성씨를 지칭하고 강쇠는 강철같은 성기를 뜻하는 것 같다.
구전으로 내려오는 '가루지기전'을 처음으로 영화화한 것은 1986년 엄종선 감독의 <변강쇠>이다. 당시 변강쇠의 원조라 불리는 이대근이 출연했는데, 육중한 체구와 독특한 음색으로 한때 검증(?) 되지 않은 한국의 대물(大物) 스타가 되었다. 그 후 그는 고우영 작가의 만화 '가루지기'를 영화화한 작품에서도 변강쇠로 출연하였다.
흥미롭게도 두 영화에서 보여지는 이대근의 이미지는 거의 똑 같다. 서민적인 풍에다가 마초적인 성격 그리고 황당무계할 정도의 정력 과시를 두고 한 말이다. 어찌 보면 <소림축구>와 <쿵푸허슬>에 나오는 주성치표 과장 액션이 이미 이 두 작품에 고스란히 담겨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쨌든 당시 엄청난 인기로 아류작들을 쏟아내게 했던 전통적 에로티즘의 소재, 변강쇠. 바로 그 인물이 20여년이 지나서 한층 업그레이드되어 2008년판 <가루지기>로 새롭게 태어났다.
특히 이번에 개봉된 영화 속 변강쇠는 예전의 주인공 캐릭터와 확연히 구분된다. 생각해보라. 변강쇠의 이미지에 봉태규를 상상할 수 있겠는가. <광식이 동생 광태>와 <방과 후 옥상>의 작품들을 통해 굳어진 꺼벙하고도 귀여운 인상.
하지만 상관없다. 어차피 기존 작품 속 고정관념 타파도 이 영화가 추구한 목표중의 하나 아닌가. 분명한 점은 예전의 변강쇠가 철저히 남성 중심의 강력한 카리스마를 풍겼다면, 봉태규표 변강쇠는 귀여움과 남성미를 함께 추구하고 있다.
마치 체격은 몸짱이면서도 풍기는 외모는 모성 본능을 자극하는 언밸러스와 유사하다. 더욱이 이 영화에는 변강쇠의 최상 속궁합 상대인 옹녀가 등장하지 않지만, 그녀 못지않은 적극적인 여성들로 넘쳐난다.
여기에는 처녀와 아줌마 가릴 것 없고, 평민이나 양반 출신도 예외가 아니다. 분명한 점은 영화 속 여성들은 전통사회를 시대배경으로 하면서도 남성의 울타리 속에 머무르지 않는다. 현대 사회 여성 이상으로 과감하게 자신의 욕구를 드러내는 영화 속 아낙네들.
이 영화의 또 다른 볼거리로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감칠맛 나는 현대판 대사를 들 수 있다. 30년 과부생활을 한 어느 여인(윤여정)의 넋두리를 들어 보라. "천하대장군께서는 고독과 정면으로 맞서본 적이 있으시오?"
더욱이 영화 속 여성들의 시대착오적 복장과 춤을 보면, 가벼운 웃음이 절로 일어난다. 이 영화는 유치하지만 재미있고 시대착오적이지만 굳이 지적하고 싶지 않다.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그냥 즐겁게 보면 되는 영화, 바로 <가루지기>의 매력 포인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