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초등 고학년은 신체변화의 시기… 성 정체성 심어줘야


23일 청소년을 위한 내일여성센터가 개최한 ‘어린이를 위한 성교육강좌’. 초등학교 4, 5학년생 20여 명과 10여 명의 어머니가 강의에 열중하고 있었다.


이제 막 몸의 변화가 시작되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자연스러운 성 태도와 올바른 성 정체성을 심어주는 게 강의의 목표다.


강사는 아이들에게 인형을 통해 남녀의 차이를 함께 직접 보여 주고 이성에게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등을 알아듣기 쉽게 설명했다.



아이들은 어머니의 출산 장면을 담은 비디오 등 여러 시청각자료를 보고 강사와 함께 열띤 토론을 벌였다. 또 자궁(子宮)을 형상화한 방 등 여러 체험실에서 이것저것 만져보고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이들은 7kg이 넘는 임신체험복을 입고 걸어 다녀보더니 “엄마 정말 힘들었겠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1시간 정도의 강의와 토론, 체험방을 거친 아이들은 “내가 정말 얼마나 소중하고 힘들게 태어났는지 알게 됐다” “여자친구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는 등의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4학년 딸과 함께 성교육센터를 찾은 학부모 제인현(서울 양천구 목동) 씨는 “딸에게 ‘신체적 변화가 창피한 게 아니다’고 설명하지만 아이가 쑥스러운지 자꾸 피한다”며 “엄마가 함께 성교육을 받으니까 아이들도 많은 걸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더 조숙해진 아이들…음란물-개방된 성문화에 노출


음란물과 개방적인 성문화 확산 분위기 때문에 아이들의 성의식도 놀라울 정도로 조숙해지고 있다.


전에는 초등학생의 경우 “자위행위가 뭔가요” 등 그나마 순진한 질문이 많았다. 하지만 이제는 “자위를 자주하면 키가 안 크나요” “가슴이 나오지 않으면 매력이 없나요”라는 식으로 ‘발전’했다. 중학생이 “오르가슴은 어떻게 느끼나요”라고 물어보기도 한다.


내일여성센터의 윤정임 성교육 강사는 “몸의 변화를 두려워하고 부끄러워하던 옛 세대에 비하면 그야말로 천양지차”라며 “마우스를 몇 번 클릭하면 쏟아지는 음란물 홍수 속에서 아이들이 자칫 성에 대한 환상이나 왜곡된 가치관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아하’ 청소년성문화센터의 왕강희 교육2팀장은 “음란물을 처음 본 아이들은 ‘우리 엄마 아빠도 저런 짓을 했어’라는 등 자연스러운 성행위까지 변태로 받아들이기도 한다”며 “왜곡된 성 가치관을 갖기 전에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교선 수박겉핥기식 성교육…부모와 함께 전문 성교육 배우자


초등학교 6학년 외아들을 둔 이모(37·여·경기 수원시) 씨는 늘 어리게만 생각했던 아들의 자위 모습을 본 충격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이 씨는 “어린 아들이 방에서 자위하는 모습을 우연히 봤는데 그 뒤로 눈도 못 마주치겠고 솔직히 꼴도 보기 싫어졌다”고 말했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누구나 이런 고민을 하지만 정작 부모나 학교의 성교육은 너무 미흡하다.


학교에서는 학년당 10시간씩 성교육을 해야 하지만 대부분 보건교사가 남녀의 생물학적 차이를 가르치는 정도다.


이 때문에 달라진 아이들의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아이와 함께 전문 성교육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부모가 늘고 있다.


내일여성센터 측은 “평일에는 매일 70여 명이 교육을 받고 있으며 토요일의 경우 6월 말까지 예약이 돼있다”고 말했다.


‘아하’ 청소년성문화센터 등 잘 알려진 성교육기관에는 매일 수십 명의 학생과 학부모가 성교육을 받기 위해 찾아온다.


왕 팀장은 “요즘은 아이와 함께 성교육을 받으려는 학부모가 늘고 있다”며 “어른조차 체계적인 성교육을 받아 본 경험이 없어 어른 교육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려대 의대 박상희(소아과) 교수는 “부모가 숨기고 쉬쉬하면 아이들은 더 이상하게 생각한다”며 “성지식과 성적 욕구를 어떻게 조화시킬지 올바르게 가르쳐 주는 것이 성교육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