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a 와 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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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과 남성이 만들어낸 법률과 제도가 지배하는 사 회에서 아내의 역사는 속박과 순종의 역사였다고 할 수 있다. 고대에 아내는 '남편의 재산'이었고, 중세에는 '출산 의 그릇'으로 남편이 합법적으로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대상이었다. 금욕을 중시하는 중세 기독교는 독 신을 결혼 생활보다 높이 평가해 아내의 지위는 과부 와 처녀 다음이었다. 불과 150여년 전까지도 결혼 을 하면 여성의 모든 권리는 남편에게 넘어갔다. 오랫 동안 결혼은 남편이 아내의 합법적인 주인임을 인정 받는 의식이었다. 하지만 법률적 남녀평등과 여성의 교육 수준 및 경제 적 능력이 향상된 오늘날, 여성은 변했다. 그러나 아 직 우리 사회와 남성은 여성의 변화를 수용하고 적응 할 준비가 완전히 되어 있지 않은 듯 하다. 미국 스탠퍼드 대학의 여성과 성 연구소에 재직인 원 로 여성학자 매릴린 옐롬의 「아내」(시공사刊)는 고 대 그리스 로마시대부터 오늘날까지 서구의 실존 여성 들의 삶, 그리고 그들이 살았던 시대의 제도와 관습 을 조망하면서 결혼과 아내상의 변화를 흥미롭게 풀어 내고 있다. 저자는 아내의 개념과 지위, 역할 등이 언제 어떻게 형성되었으며, 어떻게 변천해 왔는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설명해 나간다. 고대와 중세에 속박의 삶을 살아온 아내의 지위는 종 교개혁 이후 다소 나아졌다. 청교도 가운데 많은 남성들이 아내를 때리는 것을 금 지해 과거의 가부장적 관행보다는 진일보했고, 적어 도 상류층 여성은 자신을 따라다니는 남편 후보자들 에 대한 거부권을 갖고 있었고 가장 마음에 드는 남 자를 선택할 수 있었다. 동반자적 부부관계는 프랑스혁명과 남북전쟁을 거치 면서 형성되기 시작했다. 빅토리아 여왕 시대에는 엄 격한 도덕 풍토 아래서 신분, 재산 등 이해관계보다 는 사랑이 결혼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떠올 랐다. 여성의 독립과 자율은 '서부 개척'이라는 특수한 환 경 속에서 싹트기 시작했다. 하지만 '신여성'들의 남녀 평등을 요구하는 줄기찬 목 소리는 수많은 장애에 부딪혀 꺾이는 듯 했다. 이후 예기치 않게 찾아온 기회가 바로 제2차 세계대전이었 다. 전쟁터로 간 남자들의 빈 자리를 여성들이 채우면서 여성 노동과 고용의 혁신적인 변화가 일어났고 여성 의 지위가 상승했다. 또 여성의 사회활동이 강조되 자 자연스럽게 피임과 육아 등이 사회적 이슈가 됐 고, 성문화도 변모하기 시작했다. 저자를 따라 남편의 재산이었던 고대부터 슈퍼 우먼 이기를 요구받는 오늘날까지 아내의 역사를 조망하는 과정에서 독자들은 수많은 흥미로운 이야기를 접할 수 있다. 고대 로마의 결혼식 절차와 풍속, 중세의 결혼 첫날 밤 풍경, '로미오와 줄리엣'의 실제 모델이 된 다인 부부로 대표되는 셰익스피어 시대 영국의 비밀 결혼 관행,남자가 고백하기 전에는 여자가 자신의 마음을 표현할 수 없었던 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연애 규범, 프랑스 혁명기의 귀족 부인들이 경험한 고난, 미국 남 부 대농장의 풍속, 20세기 미국 여성들의 성 풍속, 고대부터 오늘날까지의 다양한 피임법 등이 세밀하 게 묘사돼 있다. 이호영 옮김. 728쪽. 2만2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