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는 오랫만에 삭막한 거리를
사랑처럼 흐르고 있다.
눈맞추고 배맞추고 그렇고 그럴 사람들은
비오는 날이 참으로 좋은 핑계거리다.
뽕밭에서 뽕따던 그 옛날이나
요즘이나.

헌데 이런 짭짤한 재미를 보는 일과는 상관없이
반평생(요즘 평균 연령을 고려해 보면 적어도 40년)
을 같이 살 파트너는 대체 어디 자빠져 있는겨?

요즘 미국 젊은이들은 결혼상대자를 정할 때 가장 중
요시하는 것을 무엇이라고 여러분은 생각하는가?

돈?
(자본주의의 첨단국이니 짜식들 돈밖에 모르겠지 머.)
근데 이기 아니다.

집안?
(미국 아이들, 족보도 없는 넘들이지만 거기도 다 따
질 것은 따진 다던데. 아무래도 그렇고 그런 사회계
급 끼리 서로 만날 기회가 많으니 자연히 그리 안되겠
나.)
역시 아니다.

섹스?
(하, 좋지. 거 미치는 일이쥐. 아무래도 이거 정답 같
구만)
근데 대답은 역시 아니다.

종교?
(한국도 이거 따지는 분들 꽤 있쥐. 미국이야 불교도
는 많지 않겄지만, 가톨릭이냐 개신교냐 차이는 상당
히 큰 나라니 그럴 것 같기도 하군)
역시 대답은 아니다.

정답은 'SOUL MATE'이다.
'정신과 영혼으로 서로 찡---하고 통하는 파트너',
다시말해 종교와 경제적 조건, 좋은 어버이가 될 자
질 등등을 떠나서 같은 가치관을 공유할 수 있다고 확
식할 수 있는 파트너를 뜻한다.
한국말로 굳이 바꾸자면, 음---,
쫌 막연하지만 '전생에 알고 서로 좋게 지냈던, 천생
연분의 배필'쯤 일 것이다.

미국 RUTGERS UNIVERSITY 연구진이 최근 발표한
NATIONAL MARRIAGE REPORT의 결론이다.

미혼 20대 청년을 조사한 결과
놀랍게도 94%가 결혼파트너의 첫번째이자 가장 중요
한 조건으로 막연한 것 같지만 이같은 'SOUL MATE'를
꼽았다.

응답자의 88%가 이렇게 믿었다.
"내게 매우 딱맞는, 천생연분의 배필은 반드시 어딘가
에 있다. 난 아직 못찾았을 뿐이다. 그 사람과 결혼하
면 난 절대 행복할 것이다. 그 사람과의 결혼생활은
절때루 실패 하지 않는다' 고.

또 87%는 "결혼을 할 준비가 끝났다고 생각할 때쯤에
는 이런 틀림없는 평생 배필이 짜안--하고 나타나고,
꽉 잡을 수 있다"고 대답했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많다는 것과
혼전 동거자 비율이 높아지는 것은 상관관계가 있을
까.

있다는 것이 연구자들 결론이다.
평생배필이 있다는 것에 대한 믿음은
다른 한편으로 '이 사람이 진짜 그 사람인가' 하는 불
안감, 불확실성, 자신없음으로 이어지며 결국 이혼에
대한 공포로 이어지고
이 때문에 "한번 같이 살아 보지 머, 꽁짜로 살도 섞
고, 어차피 아쉐끼덜은 나중 문제고..."
요런 생각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아마 한국 젊은이들도 미국 젊은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안그러면 '헌 짚신도 짝이 있다'는 속담이 왜 그 오래
전 부터 있겠나.

SOUL MATE의 존재를 믿는 사람이 늘면서 관련 책도 많
이 나오고 있다.
또 기독교 신앙을 믿는 사람들은 이런 소리를 하는 이
들에게 '성서에 없는 이야기로 허무맹랑'하다고 공격
하고 있다.

종교 이야기를 떠나 우리는 이렇게 결론을 내릴 수 있
을 것 같다. 구두 이야기로 풀어보자.

백화점 구두 매장에 들렸다 치자.

목이 긴 구두, 짧은 구두,
구두 코가 높은 넘, 낮은 넘.
디자인이 심플한 넘, 화려한 넘,
구두 옆구리가 너른 넘, 좁은 넘,
가죽으로 된 넘, 합성수지로 된 넘.
수도 없이 많다.

근데 내 발에 맞지 않으면 그 구두가 무신 필요가 있
나.
방안에 모셔 놓고 매일 아침 절을 할 것인가.
눈을 지그시 감고 손으로 구두를 만져보며 또라이처
럼 황홀해할 것인가.

지 발에 맞는 구두 처럼
지 몸에 맞는 구두,
지 맘에 맞는 구두가 제일이다.

구두가 발에 착 달라붙어야 하듯
평생의 반려는
몸에 착 달라 붙어야 하고
맘에 딱 들러 붙어야 한다.

그래야
섹스 뿐만 아니라
결혼해서 가정을 꾸린 다음에
해야할 출산과 육아, 자녀교육과 노후 설계 등
파트너와 더불어 궁리할 많은 일을 무난히 해낼 것이
다.

구두를 고를 때 얼마나 만져보고
가격을 따져보고 하는가.

하물며 물건도 아닌, 다른 성을 가진 사람을 만나 사
귈 때 왜 이리들 신중하지 않은가!
증말이지 괘씸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