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부터 미국 영화들은 '동양'에 이중적인 태도를 보 였다. 우월의식에서 비롯한 잘못된 편견과 함께 동양 을 신비하게 그려왔던 것.

조엘 슈마허의 <폴링다운>에서는 돈만 밝히는 '한국 인'이 등장하지만 스티븐 시걸이 주연한 그의 대부분 영화에서는'가라테'라는 무술에 대한 경외심이 나타 나 있다.

동양에 대한 '신비감'은 대부분 무예로 나타난다. 동 양인은 무술에 통달한 사람으로 나와 미국인이 총을 쏘고 있을 때 단순한 액션으로 상대를 제압하며 심지 어는 재빠른 눈빛으로 총알을 피하기도 한다.

무예가 아니면 미국인들은 동양 여성을 통해 이러한 신비감을 드러낸다. 영화 속 오리엔탈 우먼은 항상 조 용하고 단아한 이미지로 등장하며 그들은 대부분 '남 성'을 위해 존재한다. 물론 <007 네버다이>의 양자경 은 전혀 단아하지 않지만 이것은 오히려 동양 무술과 동양 여성을 융합해 놓은 편견의 집합이다.

이러한 등장 인물은 성적 매력 따윈 전혀 보여주지 않 는다. 하지만 그것 또한 서양의 시각에서 비롯한 동 양 여성에 대한 성적 환상일 뿐이다. 검은 생머리의 그녀들은 누드를 보여주는 경우가 없으며 '청순'이라 는 베일을 씌워놓은 '가련'한 존재로 묘사되어 사랑 할 존재가 아닌 정복할 대상으로 그려지는 것이다.

영화 <라스트 사무라이>에는 무예에 대한 신비감에서 비롯한 사무라이의 미학적 숭고함이 채워져 있다. 이 와함께 더 큰 신비감을 주기 위해 한 명의 동양 여성 을 끼워 넣었다.

사무라이 집안의 여성인 타카(코유키 분). 그녀의 남 편은 용맹스런 사무라이였지만 알그렌(톰 크루즈 분) 이 이끄는 부대와 치른 전투에서 전사하게 된다. 사랑 하는 남편을 잃은 것은 아픔이지만 포로로 잡혀 온 알 그렌을 보살펴 주어야 한다는 것은 '치욕'이다.

집단의 주군이자 오빠인 카츠모토에게 복수를 하고 싶 다고 말하지만 이내 다시 자신의 어리석음을 뉘우칠 수밖에 없는 그녀.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사무라이 를 닮아 가는 파란 눈의 외국인에게 연정을 품게 된 다.

타카는 지금까지 미국 영화에서 등장한 어느 동양 여 성에 뒤지지 않는 단아한 이미지를 보여준다. 슬픔을 속으로 삭이며 항상 조용히 알그렌을 치료하고, 그에 게 사케(정종)를 주고, 그가 집안 바닥에 묻힌 흙을 닦아 낸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모를 듯 알 듯한 눈빛으로 이 남자를 바라보기. 좋게 말하면 순종적인 현모양처 지만 어디까지나 이것은 남자에게만 '남는 장사'일 뿐 이다.

성적 판타지를 보여주는 방식 또한 여느 영화와 다르 지 않다. 단 <라스트 사무라이>는 그것을 좀 더 미학 적인 묘사로 끌어낸다. 타카가 옷깃을 여미는 장면은 전체적으로 풀 샷의 느낌이지만 인물을 도드라지게 하 는 조명과 함께 반쯤 열린 문 틈 사이에 피사체를 배 치해 놓음으로써 눈이 마주치는 알그렌의 시선을 관음 적인 느낌으로 바꾸어 놓는다.

그리고 알그렌이 작별인사를 하러 타카에게 다가가는 장면에서 그녀는 등을 반쯤 보이며 몸을 씻고 있다. 주위에는 풀이 우거져 있고 계곡에서 흘러오는 온천 의 한 가운데에 위치한 타카는 주위에 깔린 수증기 때 문에 판타지의 정점을 보여준다.

비록 오리엔탈리즘의 시야를 벗어나지 못한 이야기지 만 <라스트 사무라이>가 어느 정도 미국적인 사고방식 에 대해 자기 반성을 하고 영웅주의를 비판한 미덕은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타카를 묘사한 방식은 <라스트 사무라이>의 한 계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늑대와 춤을>의 '주먹 쥐 고 일어서'처럼 이방인과의 로맨스를 위해 만든 타카 의 등장은 여전히 서양 시각만 공고히 만들고 있다.

한 영화주간지에서는 다카를 연기한 배우 코유키에 게 '아름다운 피사체 그 이상'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물론 고유키는 자신의 배역을 훌륭히 연기하였고 아름 다웠지만, 편견으로 만들어진 캔버스 위에 그려진 아 름다움은 여전히 떨떠름하다.

솔직한 아름다움을 드러낼 수 있는 인물은 어떤 인물 일까? 아름답지 않아도 남자가 벌여놓은 장사에 호객 행위를 하는 동양 여성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강병진 기자 (myungrrang@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