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티즌 여러분, 오늘은 재미난 옛날 얘기부터 시작해 볼까요? 소설 삼국지에 나오는
조조(曹操)라는 인물 다 아시죠?
그 조조가 강적 원소(袁紹)의 군대를 격파했을 때, 맏아들 조비(曹丕)가 기막힌
미녀를 사로잡았답니다. 원소의 며느리인 견씨(甄氏)였죠. 조비가 부하들에게 그녀를
정중히 대하라는 특별 명령을 내리자, 조조는 아들의 마음을 눈치채고 견씨를
하사했다는 스토리입니다.

적군을 무찌르고 전리품으로 얻은 여인을 차지한 이런 얘기야 사실 흔해 빠진
스토리죠. 하지만 훗날 위(魏) 나라의 첫 황제의 자리에 오른 조비가 그녀를 황후로
삼은 사실에 이르러서는 문제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첩이라면 또 모르건대 정실(正室)
부인이라니! 그것도 일반 여염집이 아니라 황제의 정실 아내라니!
혼전 순결은 고사하고 적장의 아내였다는 기막힌 '과거'를 가진 여인이 한 나라의
국모(國母)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내
애인이 과거가 있다한들 그게 무슨 상관이야?" 큰소리치는 우리의 젊은이들이 막상
같은 입장에 처한다면 조비와 마찬가지로 행동할 수 있을까요?

헌데, '여인의 과거'가 전혀 흠이 되지 않았던 경우는 견 황후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중국문학사에 찬란하게 빛나고 있는 여류 문인들, 예컨대 서한(西漢) 시대의
탁문군(卓文君)이나 동한(東漢) 말의 채문희(蔡文姬), 송(宋) 나라 때의
이청조(李淸照) 같은 여인들도 기구한 '과거'가 그들을 슬프게 했을지언정, 새로운
사랑을 얻는 데 있어서는 전혀 핸디캡이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뿐인가요? 당(唐) 나라의 공주들은 보통 남첩(男妾)을 서른 명씩 두었다는
충격적인 기록까지 있으니, 옛 중국의 여인들이 '여자의 과거'니, '혼전 순결'이니
하는 말을 들으면 "아니, 그게 무슨 개소리?" 어리둥절할 게 뻔합니다.

동양의 남자들이 이른바 정조 관념, 아니, 보다 더 탁 까놓고 말해서 '처녀막의
미신'에 사로잡히기 시작한 것은 명(明) 나라 때부터(약 600년 전) 나타난 현상이라고
합니다.
왜 이런 경향이 나타나기 시작했을까요? 많은 사람들은 그 이유를 유교의 영향
때문으로 오해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보다 정확하게 그 이유를 따지자면, '소수
지배자들(가부장제 속의 지배자들을 포함하여)의 통치 술수'라고 보는 것이 보다
타당할 것 같습니다.

중근세(中近世)에 접어들자 사람들은 점차 자신이 지닌 인성(人性)의 가치에 눈뜨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지배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만큼 다루기가 힘들어진 거죠.
그들은 보다 편리한 통치를 위하여 사람들을 계속 어리석게 만들어야 할 필요성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효과적인 통치 방법은 '섹스'였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섹스'를 이용했을까요? 사람들로 하여금 '섹스'란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것으로 오해하게끔 만든 거죠. '섹스'를 하등 개념으로 전락시키는 일은
너무나 쉬웠습니다.
그 영혼이라 할 수 있는 '참사랑'만 제거해버리면 되었으니까요. 상대방을 진정으로
존중하고 아껴주는 '참사랑'의 마음이야말로 전제주의 통치에 가장 큰 장애물
아니었겠습니까?
육체의 얇고 작은, 언제든지 없어질 수 있는 하찮은 처녀막의 유무로 '순결'이라는
거룩한개념의 단어를 사용하는 어리석은 미신은 이 와중에 탄생한 것이죠.

혼전 순결과 처녀막에 대한 미신이 탄생하면서 섹스는 오로지 말초신경의 쾌감만을
추구하는 '홀레'의 개념으로 전락합니다. 사랑을 박탈당한 섹스는 동방의 어느 답답한
나라로 도망가 수 백년 동안 몰래 부뚜막 위에나 올라가 아직도 그저 본능과 충동에
의해 방아나 찧으며 자신을 학대한다는군요, 글세! 쯧쯧, 한심한 이야기는 계속
이어집니다...

-KIS 칼럼니스트 김용표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