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보지를 나의 주된 자원이라 생각하지도 못하고...(중략) 웃음과 창조의 원천이라고 생각하지 도 못했습니다. 그것은 두려움에 가득차 거기 있습니 다" 여성의 성기를 지칭하는 단어를 거리낌없이 써 가 며 「버자이너 모놀로그」(북하우스. 원제 The Vagina Monologues)의 저자 이브 엔슬러는 자신의 성기의 의미를 이렇게 털어놓는다. 굳이 '보지'라는 말을 노골적으로 사용하는 이유 에 대해 저자는 '그 말이 사람들에게 불안감과 어색 함, 경멸감,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말이기 때문'이 라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가 말하지 않으면 그것은 비밀이 됩니다. 비 밀은 부끄러운 것이 되고 두려움과 잘못된 신화가 되 기 쉽습니다. 나는 언젠가 그것이 부끄럽지도 않고 또 죄의식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때가 오기를 바라기 때문에 입 밖에 내어 말하기로 했습니다" 이 책은 애초 지난 96년 뉴욕을 시작으로 예루살 렘, 베를린, 런던, 아테네 등 세계 각지에서 순회 공연을 가진 동명 연극의 대본이다. 이 연극은 오는 18일부터 국내에서도 김지숙, 이경미, 예지숙 등이 출연해 무대에 올려질 예정. 극작가이자 사회운동가인 엔슬러는 200명이 넘는 다양한 인종, 연령, 직업, 계층의 여성을 만나 섹스 에서 성폭력, 월경, 레즈비언의 사랑, 오르가즘, 그 리고 출산에 이르기까지 여성의 성기와 관련된 다양하 고 내밀한 체험을 들었다. 그 인터뷰를 바탕으로 먼저 연극이 만들어졌고 출판 사로부터 한 차례 퇴짜를 맞은 뒤 비로소 책으로 출간 된 것. 어린 시절 아버지의 성적 학대를 겪기도 한 저자가 이같은 작업에 나선 계기는 한 친구와 나눈 폐경에 대한 대화였다. "그 친구가 자신의 성기에 대해서 얼마나 끔찍한 증오와 경멸, 혐오감을 갖고 얘기하는지 너무 충격 적이었다. 그래서 다른 여성들에게 성기에 관한 이야 기를 들어보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모두 불편해하고 제대로 얘기하지 못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여 성들이 자신의 몸 안에 있는 또 다른 자신에 대해 이 야기하고 싶어 못견디는 것을 발견했다" 책에는 여러 여성들이 성기를 통해 경험한 온갖 일 들이 등장한다. 자신의 음모(陰毛)를 혐오하는 남편을 위해 그것 을 깎았지만 그로 인해 성행위 때마다 고통을 느껴 야 했고 그 후에도 여전히 바람을 피우는 남편을 보 면서 '만일 보지를 사랑하려면 거기에 있는 털도 같 이 사랑해야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한여자의 독백. 첫 데이트에서 키스를 하던 도중 '홍수'가 나는 바 람에 '역겨운 냄새가 나는 이상한 계집'이란 말을 듣 고 보기좋게 차인 이후 '그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 게 됐다'는 한 할머니의 이야기. 보지 워크숍에 참가해 처음으로 자신의 성기를 들여 다보고 '경이'에 사로잡혔으며 또 그 때까지 자신이 클리토리스 찾기를 피해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한 여성의 체험담. 저자는 이처럼 '보지'라는 말을 선뜻 내뱉기 어려 운 사회의 문화적, 성적, 윤리적 통념에 도전하는 일 의 의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단언한다. "더 많은 여성들이 그것에 대해서 말할 때...여성 들의 보지는 우리 삶의 한 부분으로 통합되고 존중받 으며 신성해지게 됩니다...그 때에야 수치심이 사라 지고 폭력도 멈추게 됩니다...왜냐하면 보지는 가시 적이며 엄연한 현실이며, 또한 힘 있고 지혜로우며 보지를 말할 수 있는 여성들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 니다" 페미니스트 잡지 「이프(if)」의 편집위원이며 문 화일보 차장인 류숙렬씨가 번역했다. 160쪽. 7천 5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