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근대 동아시아 사회에서 곡해가 가장 심대한 문 헌 중 하나가 「소녀경」(素女經)이었다. 「소녀경」 어디에도 음란한 행동을 부 채질 할 만한 내용이 없 음에도 금서(禁書) 취급을 받다시피 했다. 소녀경」은 경(經), 즉, 엄연히 경전류 중 하나였 음에도, 권위 있는 텍스트를 대본으로 한 역주본 하 나 제대로 없는 대신, 이상 야릇한 섹스 테크닉을 담 은 포르 노그래피로 둔갑한 해적판이 넘쳐난 것도 아 마 이런 곡해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소녀경」은 음양(陰陽)의 교접과 조화를 추구하는 섹솔로지(sexology) 를 철학과 종교와 도덕 으로 승화하고자 한 경(經)이다. 물론 「소녀경」의 섹솔로지, 즉, 방중술(房中術) 이 현실에는 무절제하고 난잡 한 섹스와 동일시되 고, 또 이 때문에 방중술을 불로장생의 한 방법으로 간주한 도교 가 금욕을 강조하는 불교 등의 끊임없는 공격을 초래하는 빌미를 제공한 것도 부인 할 수 없 다. 그렇지만 「소녀경」 그 자체는 건전한 성생활을 권장하고, 남녀가 함께 오르가 슴에 도달하게 하며,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그런 도(道)를 통해 인간이 늙지도 않 고 죽지도 않는 신선(神仙)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소녀경」은 단순한 방중술을 뛰어넘어 음 과 양의 조화를 통해 궁극적으 로 천지인(天地人)이 합일(合一)하고자 하는 강렬한 열망을 드러내고 있으 며, 아울 러 동양의학이 태동 혹은 발전하는 큰 원천 이기도 하다. 한의학 박사인 최형주(崔亨柱) 명성한의원 원장 이 완역한「소녀경」은 남자를 불, 여성을 물로 인 식하면서 섹솔로지를 설파한 동양 방중술의 진면목을 만나게 한다. 청말 장서가이자 고증학자인 섭덕휘(葉德輝.1864- 1927)가 정리한 판본을 대본으 로 삼은 이번 역주본에 는 「소녀경」 외에 다른 방중술 대표 문헌들인 「소 녀방」( 素女方)과 「옥방비결」(玉房秘訣) 및 「통현 자」(洞玄子)를 함께 묶었다. 빠르게는 전한시대 이전에, 늦어도 당(唐) 이전에 는 성립된 것으로 생각되는 이 들 방중서 중 황제가 소녀와 대화하는 체제로 기록된 「소녀경」은 인간본 성에 기초한 음양론과 자연에 바탕을 둔 오행론을 통 해 장수(長壽)를 추구하고 있다. 소녀방은 네 계절에 따라 인체에 필요한 정기를 보 익(補益)하는 7가지 처방 을 실었으며, 「옥방비결」 은 「소녀경」에서 부족한 부분을 더욱 보충하고 있 다. 「통현자」는 「소녀경」이 방중술의 9법을 제시한 데 비해 30법을 예시하면서 여러 섹스 체위를 동물 들에 비유해 설명한다. 자유문고 刊. 328쪽. 1만2천원